애니 정보

도라에몽 애니소개

뤼케 2022. 1. 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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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장수 애니메이션 중 하나이자 국민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도라에몽은 원작만큼이나 애니메이션판의 역사도 무척 오래되었다. 총 3개의 시리즈가 있는데 편의상 1973년 4월 ~ 9월까지 니혼TV에서 방영된 시리즈를 닛폰 테레비 도라에몽(니혼도라), 1979년 4월 ~ 2005년 3월까지 테레비 아사히로 판권을 옮겨서 방영된 시리즈를 구 도라에몽, 그리고 2005년 4월에 성우를 교체하고 HD방식으로 제작된 시리즈를 신 도라에몽이라고 표기한다.[5]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방영[6]이후 2019년 10월 5일부터 토요일 오후 5시[]로 40년만에 방영 시간대가 변경된다.

일본에서 지금까지 9600편 이상 방송되었고 지금도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1996년 9월에 원작자가 타계한 이후 작품 관리는 후지코 프로덕션이라는 이름 하에 어시스턴트 및 저작권자 모임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후지코 프로덕션

시대적으로는 원작, 니혼TV, TV아사히(1979~2005) 방송판 도라에몽은 1968년에서 1970년 동안의 이야기.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배경으로 하며[8], 신 도라에몽과 도라에몽 플러스는 2004년에서 2006년까지 벌어진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설정상으로는 도라에몽과 노진구가 같이 살던 기간은 얼마 안된다. 사자에상 시공이라서 큰 의미는 없지만.[] 작중 기준 연도의 경우 원작과 니혼TV판, TV 아사히판(1979~2005)은 1969년이었다가 신 도라에몽과 도라에몽 플러스로 넘어오면서 2005년으로 바뀌었다.

 

구 도라에몽

1979년 4월 2일 ~ 2005년 3월 25일까지 총 26년 동안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제작은 신에이 동화.

한국에서 MBC를 통해 처음 소개된 도라에몽이 바로 이 시리즈. 우리가 애니메이션 채널만 켜면 볼 수 있었던 그 시리즈다. 나중에 챔프TV/애니원에서 추가로 방영한 다음 시즌 도라에몽을 <신 도라에몽>으로 들여옴에 따라 국내 팬들 사이에서 편의상 이 시즌을 자연스레 <구 도라에몽>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일본 팬들은 오오야마 성우진 도라에몽이라고도 부른다. 일단 나무위키 또한 정리상 구 도라에몽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국내에선 니혼도라가 방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평범히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이라고 하면 구 도라에몽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잦은 편.

구 도라에몽 시즌은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시리즈의 중심점 같은 작품일 만큼 방영 기간도 무척 길었고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프로그램 개편기,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맞이할 때마다 거의 매번 빼먹지 않고 <도라에몽 마츠리>라는 이름으로 1시간 ~ 2시간짜리 스페셜 방송을 했을 정도. 연말 특집은 3시간 이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원작을 무척 중시한 시즌이지만 원작과는 되려 바뀐 요소도 몇가지 있다. 첫째로 도라에몽의 '어린아이 돌보기 로봇'이라는 점이 이 시즌부터 강하게 그려졌다. 이는 도라에몽의 담당 성우였던 오오야마 노부요의 캐릭터 연구 덕분. 둘째로 뜻밖의 이슬이의 상대방을 호칭하는 단어가 하나로 정리되었다. 자세한 것은 이슬이 문서 참고. 후에 이런 개선점은 원작에 역수입된다.

색감이 전체적으로 쨍하고, 진하고, 채도가 높다. 신도라는 채도가 낮고, 옅은 파스텔톤의 색감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일부 초기 에피소드는 더빙판도 성인인증이 필요한데,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심의가 약하지만[12], 한국은 그동안 심의가 세지고, 유튜브 내에서도 자체 심의에도 걸리는듯하다.

1979년과 1999년 에피소드를 비교해보면 작화 갭이 있다. 구도라 후반부에서 도라에몽의 키가 더 커지고 캐릭터들의 머리가 작아진다. 짱구는 못말려에 비유하면 봉미선이나 나미리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훈이 내지는 신짱아 처럼 미미한 변화다. 다만 초기엔 작화가 불안정해서 단정짓기는 어렵다. 심지어 문의 색깔이 달라진 적도 있었다.

 

애니 역사

니혼 테레비 동화가 사업을 접은 뒤,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의 제작권리는 작가에게 신뢰를 얻고 있던 도쿄 무비에게 맡겨졌다. 그 뒤 1976년 가을, 도쿄 무비에서 하청 제작을 담당하던 A 프로덕션이 독립해서 신에이 동화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당시 도쿄 무비의 사장 후지오카 유타카는 전별금 삼아 신에이 동화에게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의 제작 권리를 혼쾌히 양도했다고 한다. 그 뒤부터 신에이 동화가 2005년까지 구 도라에몽의 제작을 맡게 된다

 

파일럿 방송 당시의 에피소드 타이틀 화면. 에피소드는 "공부방의 낚시터"로, 원작에 수록된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화하였다. 이 에피소드는 2005년 신 도라에몽 첫 방영 에피소드로 다시 리메이크되었다.

당시 신에이 동화의 사장 쿠스베 산키치로[]는 1977년 가을 후지코 F. 후지오를 찾아가 재추진 의사를 물었지만, 이미 애니화가 실패한 것을 겪은 후지코 F. 후지오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A 프로덕션에서 일한 타카하타 이사오한테 도라에몽을 사서 보여주고 기획서를 써달라고 요청했고 타카하타 이사오는 훑어보고는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다.' 라고 평하며 바로 기획서를 썼다고 한다. 기획서의 핵심은 원작을 완전히 그대로 애니화하하는 방식이었다. 각본가를 따로 두지 않고 원작 만화를 콘티담당을 시켜 콘티로 바로 옮겨 그리게 하고 바로 영상으로 만드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원작이 훌륭하니 크게 변경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하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또한 에피소드 하나를 20분으로 늘리는 것은 억지이므로 [] 1화에 원작 에피소드 2개를 애니화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

타카하타 이사오가 만든 기획서를 둘이서 후지코 F. 후지오한테 보여주자 바로 허락 답변을 들어 영상화 권한을 얻었다고 하며,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의) 재추진은 같은 해 요미우리 TV의 프로듀서가 기획서를 제출해 시도하였으나 방송국 상층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해(1978년)엔 소학관이 도라에몽의 재애니메이션화 교섭을 시작했으며, 같은 시기 TV 아사히 19~23시 프라임 타임 담당자 타카하시 히로시는 편성 국장과 편성 부장에게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호출당한 이후 해결책으로 월~토 10분 벨트 기획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때 타카하시는 도라에몽을 포함한 88개의 기획들을 마련했고, 때마침 아사츠 신사가 TV 아사히에 벨트 기획 상황을 물어보며 타카하시의 도라에몽 진행에 동의해 신에이가 제작한 파일럿판 에피소드인 '공부방의 낚시터'를 감상하자 편성부 내의 큰 호평을 받아내 1979년 4월 TV 아사히의 프로그램 개편기를 맞아 방영이 결정됐다.

1979년 당시의 TV 아사히 월~토 시간대(18시 50분 ~ 19시)는 간토 한정의 로컬 스폰서만 존재하여, 광고 대행사에서의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존재해 본방송 분들을 일요일 아침(8시 30분 ~ 9시) 시간대의 전국 동시 방송용으로 편집해 재방송하는 당시에 드문 편성이 확정되었다. 덧붙여 역사적인 첫 에피소드는 파일럿 필름상으로는 '공부방의 낚시터'이나 1979년 10월 3일 도라에몽 가을 축제에서 첫 방영되었고 실제로 처음 방영된 에피소드는 '꿈의 노비타랜드'이다. 이 에피소드는 훗날 신 도라에몽에서도 첫 방영 에피소드를 담당했다. 덧붙여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화가 마치 니혼TV판 도라에몽의 속편을 의식한 듯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고. 시즈카의 머리 색이 옅은 밤색인 설정이 유지되는 등, 니혼TV판 시청자들을 배려한 부분도 엿보였다. 당시에 첫 방영 빼고 시청률이 10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2010년대까지 2~30년 연속으로 꾸준히 10퍼 이상을 하며 만년 시청률 1위의 사자에상에 이어 콩라인으로 올라서게 된다.

덧붙여 도라에몽이 처음으로 노비타의 앞에 나타난 에피소드 <저 먼 미래의 나라에서>는 다음해 새해 특집에 가서야 방영되었으며 해당 에피소드는 90년대 중반에 한 차례 리메이크 되었다.[]

2002년 10월 4일 방영분부터 셀 작화에서 디지털 작화로 바뀌었고 이 때 여는 노래 및 닫는 노래가 교체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방영된 에피소드는 2005년 3월 18일에 방영된[] <도라에몽에게 휴일을?!>. 해당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엔 도라에몽이 웃으며 창밖으로 경치를 구경하는 훈훈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애니 시청률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인기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일본의 TV 시청률 순위에서도 늘 10위권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을 정도. 2005년 3월까지 일본에서 뽑은 최고 시청률은 무려 31.2%. 이후 1980년대 전반에 걸쳐서 시청률 20%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거의 매주 기록했으며 동시간대 탑에 선 적도 많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는 연간 평균으로 1990년대 후반은 15%전후, 구도라 시즌이 종료되는 2000년대 전반엔 12% 전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끝머리에서도 11% ~ 13%는 기록하는 우월함을 보였다.

종종 도라에몽의 팬층이 '신 도라에몽은 구 도라에몽의 시청률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위의 설명처럼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시리즈의 시청률 저하는 딱히 신 도라에몽 시즌 때문이라기보다는 TV시청 말고도 놀거리가 늘어나고 인터넷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시대의 흐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도라에몽 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민 애니메이션들도 이러한 경향이 있다.

씁쓸한 우스갯소리로 뽀뽀뽀와 도라에몽의 차이점이라면 뽀뽀뽀가 한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MBC 내부에서도 폐지냐 존속이냐 논란이 계속되다 잠시 폐지되었지만 도라에몽은 아직도 시청률 상위 톱10 안에 들고 있다는 것이다.

 

 

신 도라에몽

신 도라에몽은 구 도라에몽의 스토리를 2000~2010년대식으로 리메이크한 것이어서 세부적인 내용 외에는 거의 스토리가 동일하다.

2005년 4월 15일부터 방영 중인 시리즈. 제작은 여전히 신에이동화. 구 도라에몽 종영 후 2주를 쉬고 바로 신 도라에몽이 방영되었다. 이때 일본의 '도라에몽 올 캐릭터 꿈의 대집합 스페셜'이라는 방송 에서 1대 성우들이 "신 도라에몽 기대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도라에몽의 1대 성우인 오오야마 노부요씨가 새로운 시리즈도 잘보겠다고 말했다.

도라에몽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25주년을 맞아 지난 시즌에서 벗어나 큰 리뉴얼을 했다. HD제작 이전, 성우진과 제작진 교체, 캐릭터 디자인과 설정의 변경 등에서 그런 점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7월 2일 방영분부터 지상 디지털 TV 송출에 대응하기 위해 16:9 HD로 제작되었다.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 신 도라에몽에서 보여주는 플롯의 깔끔함이나 아이디어의 신선함 등은 기존 시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이다. 기존 항목에서 잦은 상품 광고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받기도 했지만, 이런 점은 지난 시즌에도 제법 있었던 요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종류와 기법이 늘어난 것뿐.(…) 구 도라에몽도 방송 당시에 종종 극장판이나 상품 광고 등을 했다.

한국에선 대원미디어 계열의 챔프TV/애니원에서 기존 도라에몽의 시청률이 잘 나오자 이 시리즈도 추가로 방영하게 됐는데 이를 <신 도라에몽>으로 소개하면서 국내에서는 이 시리즈를 신 도라에몽으로 부르게 된다. 일본팬들은 미즈타 성우진 도라에몽으로 부른다. 단지 국내는 니혼도라가 방영된 적이 없어서 그냥 애니메이션 도라에몽하면 구 도라에몽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굳이 신 도라에몽 시즌을 지칭해야 할 때만 신을 붙이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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